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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아버지의 시간

기사입력 2013.07.3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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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해남방송
    아버지가 쓰시던 전기밥통이 고장 나서 새로 구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내게 눈짓을 하더니 이번에 좋은 걸로 하나 사드리자고 속삭였다. 기왕 용돈 드리려고 했으니 거기다가 조금만 더 보태면 될 거라는 얘기였다. 3월인데 때늦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읍내에 나가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좀 값나가는 걸로 하나 사드렸다. "내가 괜히 밥통 산다고 혔능개비다. 장날 혼자 와서 살 것인디 그렸다. 내가 얼마나 쓴다고 비싼 것을 사야." 아버지는 고마움도 고마움이지만 괜한 돈 쓰게 해서 미안하신 모양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시계가 고장 났다며 시계방에 들러야 된다고 했다. 아버지 회갑 때 작은형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꼭 17년 먹은 시계란다. 그새 시간이 많이도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방을 찾아서 쭉 올라가는데 어찌된 것인지 가게들이 장사를 하는 것 같지를 않았다. 대낮이라도 보통 영업을 하는 가게는 매장에 불을 켜놓게 마련인데, 고향의 가게들은 그렇지를 않았다. 다들 불이 꺼져 있었다. 아버지는 원래 이곳은 다 그런다며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는 말투다. 광주 인근이라 뭉텅이 돈 쓸 젊은 사람들은 모두 광주로 빠져나가버리고 천 원짜리 헤아리는 손님들뿐이니 아마도 전기세 아까운 생각도 들 만 했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섰다. 미닫이 너머로 굼뜨게 일어서는 여자가 보인다. 여자는 누워서 텔레비전이라도 보고 있었는지 자꾸 방안을 돌아보며 나왔다. 시계를 내어놓자 전화를 했다. 남편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난 그 사이 침침함에 눈이 익숙해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20년 정도는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시계를 선물 받았던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고쳐야 될 것은 아버지의 시계가 아니라 이 시계방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계방의 시간이 멈춰버렸다는 것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보통 시계방이라 하면 금붙이를 함께 취급하는 것이 상례인데 이곳은 그런 것이 보이지를 않았다. 손목시계도 거의 없고 벽시계만 벽에 붙어 있었다. 그나마 벽에 붙은 시계들의 시각도 들쑥날쑥 제 개성을 뽐내기 바빴다. ‘이거 이런 가게에 손님이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며칠 만에 온 손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남자가 와서 작업등을 켜고 까만 확대경을 눈에 끼웠다. 전지 하나 가는데 확대경까지는 너무 요란하다 싶었다. 남자는 동그란 전지를 넣었다 빼었다를 반복했다. 자꾸만 만지작거리면서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럴수록 내 몸은 더 꼿꼿해지면서 그 남자의 손끝을 들여다보았다. 한참 만에 남자가 확대경을 끼운 채로 내 쪽을 건너다 봤다. 그 모습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좌우지간 외관만은 전문가의 모습이었다. 얼마냐고 묻는 말에 얼른 가격은 이야기하지 않고 말이 길어진다. "나사가 빠가 디야서 뽄드로 붙였습니다. 할아부지도 나이가 묵으먼 관절이랑 뭐시랑 말을 잘 안 듣잖습니까? 요것도 마찬가지제라. 그랑께 요것도 늙어부렀단 말이제라." "내가 요것을 아주 보화로 알고 있는 것이여. 일 헐 때는 벗어놓고 차도 안 혀. 내 환갑 때 선물로 받은 것이란 말이여. 근께 잘 고쳤단 말이제?" "암만이라우. 물 안 들어가게 뽄드칠까지 해놨습니다. 그라고 다음에 뚜껑 열라고 허먼 뚜껑도 잘 열어지게 해놨습니다." 남자는 이렇게 한참 말을 쏟아 놓은 다음 10,000원을 받았다. 돌아서 나오는데 웃음이 나왔다. 한 5,000원이면 될 것을 10,000원을 받으려니 자신의 양심만큼 말이 길어졌을 거였다. 남자는 아버지의 시계를 돌게 해주고, 우린 멈춰버린 시계방을 돌게 해주었다. 다시 아버지의 시계가 힘차게 돌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에도 화색이 도는 것 같았다. 멈춰버린 시계가 사위스러워 아버지는 고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가진 물건은 이렇게 주인을 닮아 다들 낡았다. 얼마나 쓰랴 싶어 그냥 쓰다 보니 그런가 보다.

    새로 사온 밥통으로 점심밥을 지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을 보더니 아버지는 "야, 꼭 테레비서 본 것 맹키로 좋다야." 아버지로선 최상의 표현이었을 터였다. 고향 그리고 아버지의 시간 속에서 우린 모처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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