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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서 드러난 2천 년 전 마한의 삶…해남 군곡리 집터가 말하는 해양교류

원형에 가까운 움집과 기둥구멍 확인…취사·저장·토기 생산 흔적 남아
청동기 후기부터 철기·마한·삼국시대까지 이어진 복합 생활유적
중국 화폐 ‘화천’·외래계 유물 출토…백포만 해상교류 거점 가능성
“사진 속 구덩이 모두가 주거시설은 아냐…정밀한 유구 판독 필요”

해남뉴스 박충배 편집 및 논설위원 news@hbcnews.kr
2026년 07월 24일(금) 22:12
송지 군곡 마한 집터 / 사진제공=AI호남뉴스
【해남=해남뉴스】 haenamnews@kakao.com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의 낮은 구릉에서 고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와 기둥구멍, 저장시설 등 생활 흔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은 군곡리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생활유구 전경으로 보인다. 땅을 파서 바닥을 낮춘 집자리와 건물을 지탱했던 기둥구멍, 저장구덩이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수혈들이 복잡하게 분포해 있다. 이는 한 채의 집만 존재했던 공간이 아니라 여러 시기에 걸쳐 사람들이 집을 짓고 고쳐 살았던 취락의 흔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사진에 보이는 모든 구덩이를 곧바로 ‘집터 시설’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고고학에서는 구덩이의 모양과 깊이, 흙의 색깔, 내부에서 나온 토기와 숯, 기둥 배열 등을 종합해 집자리·기둥구멍·저장공·폐기구덩이 여부를 판정한다. 개별 유구의 정확한 시대와 기능은 발굴조사보고서를 통해 확정해야 한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군곡리 유적에서는 패각층 인근 구릉 정상부에서 지름 약 3.5∼3.6m의 원형에 가까운 집자리가 확인됐다. 집자리의 파인 깊이는 약 10㎝였고 외곽에서는 지붕을 받쳤던 것으로 보이는 기둥구멍 6개가 발견됐다. 내부와 주변에서는 심발형 토기와 시루 조각, 굽다리접시 조각, 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됐다.

시루는 곡물 등을 쪄 먹었던 조리생활을, 토기와 저장구덩이는 식량의 보관과 정착생활을 보여주는 자료다. 집자리뿐 아니라 토기가마와 패총, 의례 관련 유구까지 확인됐다는 점에서 군곡리는 단순한 조개 채취 장소가 아니라 생산과 소비, 주거와 제의가 함께 이뤄진 복합 취락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군곡리 유적의 시간적 범위도 넓다. 발굴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삼국시대에 이르는 문화층이 확인됐다. 따라서 사진 속 유적 전체를 하나의 시기인 ‘마한 집터’라고만 표현하기보다는, 여러 시대의 생활 흔적 가운데 마한 사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집자리와 생활유구라고 설명하는 것이 학술적으로 타당하다.

특히 패각층이 14개 층으로 구분되고 이를 다시 여러 문화단계로 나눌 수 있어, 군곡리 유적은 호남지역 선사·고대문화의 연대를 밝히는 중요한 기준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조개껍데기가 토양의 산성화를 막아 뼈와 뿔로 만든 도구, 동물 뼈와 해산물 흔적 등 당시의 식생활 자료가 비교적 잘 보존된 것도 학술적 가치가 크다.

군곡리에서는 중국 신나라 때 사용된 화폐인 ‘화천(貨泉)’을 비롯해 외래계 유물과 제주지역과의 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토기도 출토됐다. 2024년 발굴에서는 실제 선박 구조를 본뜬 것으로 해석되는 배 모양 토제품도 확인됐다. 이는 백포만을 바라보는 군곡리 주민들이 농경과 어로에만 머물지 않고 서남해안과 제주, 중국을 잇는 바닷길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화천이나 배 모양 토제품 한두 점만으로 군곡리를 곧바로 ‘국제무역항’이나 특정 마한 소국의 수도로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접안시설과 창고, 대규모 생산시설, 교역품의 출토 양상 등 추가 고고학적 증거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군곡리 집터는 화려한 왕릉이나 성곽이 아니다. 하지만 기둥 하나를 세웠던 구멍과 불을 피운 자리, 곡식을 저장했던 작은 구덩이는 2천여 년 전 해남 사람들이 어디에서 잠들고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바다와 연결됐는지를 증언한다.

군곡리 유적은 마한이 기록 속의 막연한 고대국가가 아니라, 백포만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집을 짓고 토기를 만들며 해상교류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역사였음을 보여주는 해남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사진 설명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유적에서 드러난 고대 집자리와 생활유구. 집터 외곽과 내부에 기둥구멍과 저장시설 등으로 추정되는 여러 수혈이 분포해 있다. 정확한 시기와 개별 시설의 성격은 출토유물과 층위에 대한 정밀 분석을 거쳐 판단해야 한다.
해남뉴스 박충배 편집 및 논설위원 news@hbc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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