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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청년 귀농 양봉인 김태형, “‘청년 귀농’ 열정 하나면 충분”
 
윤재철기자 기사입력  2017/08/01 [11:46]
 


▲     © 해남뉴스

요즘 귀농대세로 청년 귀농 사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속속 접하곤 한다.

 

한 예로서 전라남도 해남에는 꿈과 열정을 가지고 양봉 사업에 뛰어든 20대 청년 양봉인 김태형씨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김태형씨의 삶은 그야말로 평범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남들보다 누리고 살진 못하였지만 부족함 없이 살아왔고 요즘 청년들처럼 본인의 적성에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신하지도 못하고선 자연스럽게 전공과목인 수학을 선택하여 대학에 가게 된다.

 

이런 그가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분야로 귀농을 선택하며 일생을 걸게 된 계기에 대해 알아본다.

 

요즘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취업이다.

 

김태형씨 역시 현실을 사는 여느 청소년과 다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해야 할까?

 

가능성은 있을까?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

급여는 문제없을까?

정년을 보장 받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것.

 

특히나 수학을 전공하였기에 학원 강사, 학교 교사 등 직업의 선택이 제한적이고 그러기 위해선 고시생 이라는 숨 막히는 전쟁 속에 뛰어들어야 했으며, 몇 년에 걸쳐 싸워야할지, 승리는 할 수 있을지, 감당이 안된 김태형씨는 여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태형씨가 여러 고민을 하던 중 어머니로부터 양봉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이에 대한 어떤 상식조차 없었지만 결론은 양봉에 뛰어들게 된다.

 

“잘하면 수익도 괜찮고, 건강도 좋아지며,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고 결심을 굳히고 본격적으로 양봉의 길에 들어선다.

 

그렇게 해서 김 씨는 어머님의 지인인 해남군 삼산면에 살고 있는 김일기 전 교장선생님을 찾아오게 된다.

 

김일기 선생님은 당시 해남동초등학교장를 끝으로 정년퇴임한 후 양봉사업을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아주 양심적인 꿀을 소량생산하고 계셨는데 곧바로, 그분 곁에서 일을 하려 하였으나, 양봉업 역시 기술이 필요한 사업이므로 김일기 선생님의 소개로 양봉 종봉 연구를 40여년 넘게 하신 이천의 대벌 선생님께 1년간 양봉기술을 배우러 찾아가게 되고 그곳은 봄 벌을 키우기 위해 이동해있던 경상남도 하동군에 자리하고 있었다.

 

2014년 3월 김태형씨는 드디어 처음으로 양봉업을 배우기 시작한다.

 

당시 김태형씨의 나이 26살,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김태형 청년은 많은 고난을 겪게 된다.

 

바쁜 움직임 속 도심이 아닌 정막한 시골에서 그동안 좋아하고 즐겼던 음식도, 친구도, 도시에서는 흔한 pc방도 없고, 대학생활 동안 만나왔던 애인과도 이별해야 했다.

 

청춘 시절 가장 큰 설레임이고 한편의 고민은 연애인데 그가 항상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리는 고통속에서 계속된 양봉, 양봉은 그야말로 더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벌은 무서웠고 양봉용어는 생소하여 일을 쉽게 배우기 힘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전화에 소리 없이 운적도 있었고 방심해 모자를 벗은 사이 눈에 벌이 쏘여 온 얼굴이 통통 붓고는 결국 울며 집으로 도망친 적도 있었다. 하필 그날은 그의 생일 이었단다.

 

다시 가자담고 역경을 이겨내기로 마음먹게 된다. 현실이 힘들지라도 지나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배웠던 군대생활을 돌이켜 보며 열심히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지금의 김태형씨는 “그때의 저를 별말씀 없이 지켜봐주고 받아주신 스승님께 죄송하고 감사드린다.” 라고 말한다.

 

김태형씨는 그렇게 이렇게 고난을 겪은 1년간의 경험을 끝내고 드디어 해남으로 돌아온다.

 

해남이 그의 고향은 아니지만 김일기 선생님이 터를 잡고 계셨기에 사업을 배우며 일을 할 수 있어서 전라남도 해남을 선택하게 된 것.

 

그동안 대벌스승님 곁에서 고난을 이겨냈다면 이제는 해남에서 고통을 겪을 차례가 된 것이다.

 

2015년 당시 27살의 청년 김태형씨의 재산은 오롯이 학자금 대출 즉, 빚 밖에 없었다.

 

양봉을 국가 보조 사업으로 사업을 시작하려 했으나, 보조금 지원은 사실상 청년 혼자서 해결하기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결국 어머님과 김일기 선생님의 도움으로 소량의 벌을 사고 작은 땅을 사서 40여 통의 벌통으로 이동 벌통을 시작하게 된다.

 

1년간 기술을 배우고 왔다하지만 양봉업 이라는게 ‘40년을 해도 초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상황별 대처방법이 다르기에 김일기 선생님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그해 5월 드디어 첫 꿀을 따러 경상북도 칠곡군으로 이동하고 바로 아카시아 벌꿀을 채밀하게 된다.

 

여기서 김태형씨는 세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꿀에는 3가지 종류의 꿀이 있다고 한다.

 

같은 꿀 이지만 꿀을 1~5일 정도 만에 채밀하는 물꿀 (수분 함량이 높은 꿀), 꿀을 10일 이상 숙성시켜 벌들이 봉해놓은 밀납을 개봉하여 채밀하는 봉개꿀(수분 함량이 낮고 영양소 함량이 높은 꿀), 마지막으로 설탕과 물을 혼합해 먹이로 주며 채밀하는 사양꿀이라고 한다.

 

보통의 양봉업자분들은 첫 번째 경우인 물꿀을 채밀하여 저온숙성이라는 방법으로 기계를 돌려 수분을 증발시켜 지금의 꿀을 만들어 내는데 보통 이러한 꿀의 유통기한은 2년으로 판매된다.

 

사양꿀 같은 경우는 제과 제빵 등에 많이 이용된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시작했으니 이 역시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방법 즉, 두 번째 방법 ‘봉개꿀’을 채밀하기로 결정한다.

 

물꿀 보다 양도 훨씬 적고 봉개된 벌집을 칼로 하나하나 잘라내야 하기에 인력도 많이 필요하며 벌이 도망치는 분봉 상황에 더 쉽게 노출되는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봉개꿀을 채밀하려는 이유는 물꿀 보다 영양소도 매우 높고 유통기한도 없다고 확인되며, 사실상 남들은 채밀하지 않는 가장 영양가 있고 좋은 진짜 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벌꿀 역시 식품이고 건강보조제이며 이러한 제품을 양봉업을 시작하기엔 어린 나이로써 지금부터 고객과의 신뢰와 양심적인 마인드로 사업을 이끌어 나간다면 “후에 본인이 부모님 나이가 되었을 땐 모두가 본인을 믿어주지 않을까?” 라는 믿음 때문 이었다.

 

하지만 ‘진짜 꿀’ 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긴 어렵고 신뢰는 쉽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꿀 위에 떠 있는 잔여물이 찌꺼기가 아닌지 꿀이 굳으면 꿀에 설탕이 들어간 건 아닌지 의심하였다. (여기서 꿀 위에 떠 있는 것은 기계를 거치지 않아 생기는 화분이나 소량의 밀랍이 떠오른 것 이고 설탕이 굳는 이유는 꿀 내에 포도당이 과당보다 높을 때, 꿀에 찔레나 초화밀이 섞이거나 15도 이하에서 꿀을 보관할 때 등 굳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감숙성이란 곳엔 강꿀 이란 명칭의 꿀이 있고 이는 굳은 꿀이 망치로 쳐도 부셔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고 하는데 그 꿀의 가격이 기존의 꿀값 보다 네다섯 배는 비쌀 만큼 좋은 꿀이라고 한다.)

 

이러한 의심 속에 많은 역경을 겪지만 교직자로써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양심적으로 살아오신 김일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그분과 함께 꿀을 따러 다니며 같이 고생 하다 보니 점차 사업은 활기를 띠게 되고 2017년 현재는 3년간 양심적인 방법으로 경상도에서 채밀한 아카시아, 전라도에서 채밀한 떼죽잡꿀, 옻꿀, 밤꿀, 화분, 강원도에서 채밀한 피나무 꿀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판매량도 점차 늘어가고 있고 매년 소량의 생산량 이지만 매진이 되기 시작했다.

 

매체 등을 통해서 선전이 많이 된 아카시아 꿀이나 화분 같은 경우는 생산되기가 무섭게 판매되곤 한다. 여기서 그가 배우는 교훈은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中>”였다.

 

김태형씨는 “좋은 사람을 만나 이런 행운을 발판 삼는 것도 좋은 일이며 고난과 역경이 경험으로 변하는 것 역시 좋지만 언제나 행운을 경계해야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고 한다.

 

이는 이땅 대한민국에서 젊은 청년이 귀농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까지는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또 언제 시련이 닥쳐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란다.

 

끝으로 김태형씨는 “앞으로도 소비자 분들에게 좋은 품질의 꿀을 보내드릴 수 있도록 힘들어도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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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01 [11:46]  최종편집: ⓒ 해남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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